
151호 별님에게 물어봐 # 3
이정현 학우와 소설가 한유주 인터뷰
달의 뒤편, 없는 것이 있다.
(극작과 이정현 학우, 소설가 한유주를 만나다)
빛나는 달의 뒤편을 보고 온 여자가 있다. 지구에서 그곳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고, 발화(發話)될 수 없었던 그곳의 이야기는 그녀를 만나 마침내 발화(發花)했다. 지난 4일, 올해 제 7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한 이정현 학우(연극원 극작과 05)는 『달로』의 소설가 한유주를 만나 '말'이 될 수 없었던, 그 달 뒤편의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이정현 (이하 정현) :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해요. 친구들이 요즘 특이한 소설이 있다고 해서 한유주씨 글을 처음 접했는데, 읽어보니 어떤 분이실까 정말 궁금하더라구요. 미인이시라고 듣기도 했고(웃음).
한유주 (이하 ★) : 미인이요? 사내 같다는 이야기는 자주 듣는데. 제가 말을 잘 못해서 오늘 잘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웃음).
정현 : 처음 어떻게 글을 쓰시게 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독특하게 글을 쓰셨을 것 같아요.

★ : 글 써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안했었는데,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건 좋아했어요. 글자를 빨리 깨쳤고, 집에서 그게 신기하니까 책은 사달라는대로 많이 사줬던 것 같아요. 아마 나중에 공부 잘할 줄 알고 그랬을텐데(웃음). 중 ? 고등학교 때도 수업 시간에 자거나 책을 읽은 기억밖에 없어요. 제가 대학 때, 교양과목을 별로 안 좋아해서 초기에 필수과목을 거의 다 들어놨었는데, 3학년이 되니까 들을 수업이 없는 거예요. 남의 수업이나 들어보자, 하고 국문과를 보니 문예창작론 수업이 있길래 들어봤죠. 학기말까지 단편소설을 하나 써 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뭐 쓰지, 하면서 쓴 게 『달로』에요. 성적은 A0였는데(웃음), 시를 쓰는 친구한테 그걸 보여줬더니 어디 한번 내보라고 해서 냈는데 그게 된 거죠. 그래서 습작 기간이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말하기도, 쓰기도 싫어했는데 그게 왜 직업이 됐을까, 생각하면 재밌는 것 같아요(웃음).
정현 : 졸업 후 인문학 관련 대학원을 생각하고 있는데, creative에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조언을 받았어요. 현재 서울대 대학원 미학과에 재학 중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 오히려 전 졸업했을 때 네가 당장 돈을 벌어서 가족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게 아닌 이상,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때도 미학과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원서를 쓰고 시험을 봤는데 어떻게 붙은 거죠. 가보니까 그 안에 전공이 미술 이론, 독일 미학, 영미 미학 세 가지로 나눠져 있더라고요. 현대 미술은 전혀 관심이 없었고, 독일 미학은 어째 좀 아닌 것 같고 해서 영미 미학을 선택했더니, 그 쪽은 또 분석 미학이더라고요. 제가 생각했던 거랑은 완전히 달랐던 거죠. 너무 철없이 간 면이 없잖아 있지만 공부는 많이 됐어요. 정말 재미없게 다니긴 했지만(웃음). 사실 어떠한 경험이라도 글 쓰는 것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다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것에도 많이 도움을 받았어요. 그리고 단어들의 원뜻과, 실생활에서의 쓰임과의 차이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요.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다른 것이지만 다 같은 '사랑'이라는 추상명사로 불리잖아요. 그런 언어적인 문제들을 계속해서 생각해보는 중이에요. 아마 무엇이든 내가 끌리면 가는 게 맞을 거예요. 준비가 되어 있으면 더 좋겠죠.
정현 : 이른 나이에 등단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혼자 글 쓰는 것과, 문단의 일원으로서 쓰는 것에는 정서적인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물리적인 차이도 있을 것 같고.
★ : 등단했을 때가 너무 어릴 때라서, 그 동네에 가면 일단 신기하게 보는 거예요. 그 땐 문단이란 게 있는지도 잘 몰랐어요. 처음에 등단했을 때 선생님들께서, '너한테는 청탁 안 갈 거다, 그 대신 네가 열심히 써서 나에게 원고를 주면 지면은 알아봐 줄 수 있다. 너는 너 하고 싶은 대로, 맘대로 써라' 그러시더라고요. 그게 얼마나 고마운 말인지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되게 어렵고, 감사한 일인 거예요. 다행히 생각보다 청탁도 많이 들어왔고, 독자도 좀 있었죠.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너 맘대로 써라'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거예요. 사실 맘대로 쓰지 않은 적도 없지만, 되는대로 쓴 것 같지는 않고(웃음). 작년부터 '루'라는 동인을 하게 됐는데, 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같이 뭔가를 한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문단이고 뭐고 나랑은 상관없는 것 같다고 생각 했었는데, 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주변 분들에게 자극도 많이 받고, 생각도 조금씩 바뀌고요.
정현 : 소설에 시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데, 사물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 편이세요? 아니면 사람과의 소통 속에서 영향을 많이 받으시는지.
★ : 전부 다인 것 같아요. 사실 요즘에 사물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는 중이라서 뭔가 찔린 기분인데요(웃음)? 제가 떠도는 걸 좋아해서, 돈만 좀 생기면 여행을 갔었는데 요즘엔 시간이 많질 않아서 가기가 쉽지 않네요.
정현 : 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고 싶은데(웃음), 아기가 어렸을 때는 동화를 써주고, 애가 좀 크면 성장소설을 써주고, 대학 갈 때 즈음에는 스무 살 이후의 아이의 삶을 위한 희곡을 써서 공연해주는 게 꿈이에요. 소설을 쓰시면서 다른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지 않으세요?
★ : 글쎄요. 잘 모르지만, 희곡은 사건이 없으면 유지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시는 사건과는 별개의 장르라는 생각이 드는데, 소설은 사건이 없어도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소설이라는 장르가 규정이 되어 있다면, 소설만이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고, 그러면서도 소설의 외연을 넓혀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고, 이 시도가 실패로 끝날 것 같긴 하지만(웃음).
정현 : 한유주씨의 소설이 많이들 '어렵다'고 하시더라구요. 자신의 소설이 난해하다고 생각하세요?
★ : 언어는 굉장히 의식적인 도구잖아요. 그렇지만 파악되고 이해되는 부분이 있으면 분명히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어요. 사람들이 종종 대체 달이 뜻하는 게 뭐냐고 물어봐요. 근데 사실 대답하기가 힘들어요. 보통 '달은 굉장히 흔해 빠진 상징이고, 전 세계 어디서나 보이고, 여러분도 거의 매일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달을 보지 않느냐. 단순히 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떤 이미지나 생각이나 기억이 있을 텐데 그냥 그런 것뿐이다'라고 대답하는데,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인 것 같아요. 얼개가 파악되는 부분이 있다면, 분명 파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여기 있는 이 테이블의 새하얀 색깔, 혹은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둥그스름한 형태에서 쾌를 느낄 수도 있고요.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이나 추상화를 접했을 때조차 그것들은 분명 우리에게 '어떤 것'들을 불러일으키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계속 작품에서 무슨 의도를 읽어내려고 해요. 물론 그게 당연하죠. 이해하고, 파악하고 싶은 욕망이 있으니까.
정현 : 일본에서 만났던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모든 작가에게는 작가가 꿈꾸는 이상적인 독자상이 있다' 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한유주씨에게도 그런 게 있나요?
★ : 제 글에 의도는 없는데요(웃음), 최소한의 의도를 말하자면, 자신 안에 숨겨져서 안 보이는 부분을 아주 살짝 본 듯한 느낌을 가져주셨으면, 그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실제로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언어적인 그림들이 있잖아요. 그게 정말 특별한 것 같아요. 안 겪어봐서 모른다고는 하지만, 독서라는 행위로 경험하는 것들 또한 겪어서 알 것도 아니니까요. 의식적으로 파악하려고 하니까 어렵게 느껴지는 걸 거예요. 그냥 읽는 행위 자체를 즐겨주셨으면 해요. 너무 안 읽혀서 음독했다는 분들도 되게 많았거든요. 필사를 해본 적은 많지만 그렇게 음독해본 적은 없었는데, 정말 감사하죠. 이건 다음 책 작가의 말에 쓸까 하는 말인데(웃음), 단 한 명의 독자가 복수로 존재하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일반 독자분들이 메일을 보내주실 때가 있는데, 제 의도와 상관없이 모르고 있던 부분을 말씀해주시기도 하고, 평론가들이 집어내지 못한 부분을 세심하게 지적해주실 때도 있어요. 읽는다는 행위는 분명히 수동적인 것은 아닐 거예요.
정현 : 마지막으로 우리 학교에 글 쓰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 드릴게요.
★ : 조언은 내가 듣고 싶은데(웃음). 다른 학교 문창과 수업을 두 개 나가는데요. 처음에는 너무 부러운 거예요. 난 배워 본 적이 없으니까. 얘네들은 쓰는 기술을 배울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가! 제가 어떻게 쓰라고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그냥, 많이 읽고, 많이 보고, 감각을 열어놓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자기가 얼마나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참, 무엇인가에 대한 최종적인 가치판단은 발설하지 말고 혼자 가지고 있되, 뭐든 배워서 남 주겠다는 생각으로 하세요.
이민휘 기자 (colagom@karts.ac.kr)
택주형 감사요_

덧글
티벳 2009/04/19 08:14 # 삭제 답글
하하하.이정현이에요. 여기서 보니 신기하네요.wheee 2009/04/19 21:43 #
우와. 신기하네요. 반가워라.흰소리 2009/08/29 22:48 # 삭제 답글
와 한유주~ 퍼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