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장소에 관한 글쓰기_과제1 by wheee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 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밤새 거실 탁자에서 소주를 마시다 잠이 들었나보다. 일어나보니 어슴푸레 동이 틀 무렵이었다. 창 밖에는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 있다. 나는 소주병을 한 손에 쥔 채로, 가족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빗장을 열고 들판에 나갔다. 아직 아무도 나오지 않아서 눈 위에는 발자국 하나 찍혀있지 않았다. 들판이 밝게 빛났다. 날씨가 조금은 으슬으슬했지만 고요한 침묵이 왠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목장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검은 울타리를 손으로 조금씩 쓸면서 앞으로 걸어나갔다. 하늘은 칙칙한 보랏빛이었다.

  이 곳에 이사 온 지는 일년 반이 채 안된다. 마을의 규모가 크고 사람도 많아서 언제나 시끄럽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특히 더 시끄럽다. 그리고 어머니… 언제나 술을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시는 어머니 때문에 집에는 남아나는 물건이 없다. 나는 늘상 어디론가 떠나는 상상을 한다. 깊은 산 속, 고요하고 따뜻한 집. 마을은 아주 작고, 사람도 몇 살지 않는다. 하늘이 낮고 땅의 소리가 명확히 들리는 곳. 모든 생물이 아주 느리게 빛을 발하는 곳. 예쁘고 차분한 아내를 만나서 아이는 둘 쯤 나아 기르겠지. 장에 가는 날에는 옆집에서 마차를 빌리고… 아마 감자나 고구마 같은 걸 좀 내다팔면 한달에 몇 번은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참 길을 걸었더니 술이 다 깼다. 어느새 해도 손톱만큼 떠 있었다. 햇빛이 얇게 비어들자 들판이 조금씩 명징하게 제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울타리 위에 쌓인 눈들도 조금씩 녹아 없어졌다. 밝아서 모든 것들이 세상으로 나오자 오히려 마음이 울적해 졌다. 나는 아무 것도 숨길 수가 없다. 그녀를 생각했다.

  나는 작년에 이 곳에 와서 그녀를 만났다. 소작농의 딸이었던 그녀는 해가 떠 있을 때는 아버지의 일손을 돕고, 해가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가 다섯 동생들을 돌보았다. 얼굴은 타는 듯이 붉었고 검은 눈매는 따뜻하지만 길게 찢어져있어 어딘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무런 변화 없는 삶 속에서도 늘 화통하게 웃고 얘기하는 그녀를 사람들은 모두 좋아했다. 시장의 사내들도 한번씩, 두 번씩 그녀를 훔쳐보았다. 시장에서 그녀를 본 이후로 나는 매일 그녀의 집 앞을 서성거렸다. 몰래 편지를 건네고, 동생을 꾀어내어 맛있는 것들을 손에 쥐어 주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늙은 내가 젊은 아가씨를 탐내자, 자연스레 주변 아낙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녀의 집 앞으로 간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그녀의 집이,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매일 집 앞에서 서성이는 나를 보고 그녀를 추긍해 내 편지들을 다 보고, 두말없이 그녀를 이끌고 원래 살던 집으로 되돌아갔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아버지보다 그녀가 더 괘씸했다. 내가 편지를 건낼 때마다 못 이기는 척, 그러나 반가운 기색으로 받아들던 그녀가 아닌가!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매일 밤 소주병을 손에 쥐고 눈 내리는 들판을 떠도는 사내. 해가 뜨기를 두려워하는 사내. 우리 집에는 두 주정뱅이가 산다. 해는 이제 꼬리까지 다 드러내고 나를 본다. 다 떴는데도 눈 때문에 희뿌옇게 보인다. 가난한 내가 술을 마셔서 그렇게 보이는 지도 모른다… 눈이 아파서 눈 위에 털썩 쓰러졌다. 차가운 눈이 옷깃 안으로 쏟아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이 편이 낫겠다. 온 몸이 눈덩이가 되는데, 어쩐지 편안한 기분이 든다. 잠도 자꾸 오고, 예쁘고 차분한 아내는 꿈에서 만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른한 잠이 온다. 다시 조용한 밤이다. 깊은 산 속에, 빛이 새어나오는 작은 집이 보인다.

  그곳에, 나타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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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09/14 15:1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wheee 2009/09/14 20:37 #

    헤헤헤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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