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건반에는 바다가 떠오르고, 그의 목소리에는 하늘이 트인다. 90년 대 초, 한국에서 이제까지 듣지 못했던 세련되고 환상적인 음악을 내놓아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꾸준히 그만의 그림을 그려왔다. 그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어떨까. 부푼 기대를 안고 최근 ‘정원영밴드’ 2집을 발표하고 활발히 활동 중인, 음악가 정원영 씨를 만났다.
정말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정원영씨 곡을 들어보면, 그 속에 락, 재즈, 클래식, 팝 등 수많은 장르가 녹아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음악적 배경을 가지고 계시길래 그런 다양한 음악을 하실 수 있는 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이번 추석 때 집에 내려가니까 아버지가 3, 40년대 샹송을 듣고 계시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냇킹콜이나 앤디윌리엄스 같은, 가수들 노래를 많이 들으셨어요. 어머니는 제게 클래식 전집을 사주셨고, 저는 제 친구들로부터 비틀즈, 레드제플린 같은, 전세계를 휩쓸고 있던 히트곡들을 접했지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인 백그라운드가 좋았던 셈이에요. 또 초등학교 다닐 때는 피아노가 너무 치기 싫어서,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60원을 들고 동시상영관에 도망가서 아무 영화나 다 봤어요. 그것도 굉장히 큰 영향이 됐었던 것 같아요. 음악도 정말 많이 들었죠. 학교에서 집에 갈 때, 빨리 올라가서 턴테이블에 앨범을 올려야지, 두근두근 하면서 집에 갔던 기억이 나요. 미국에 가서도 음악도 음악이었지만 계속해서 영화를 엄청나게 많이 봤고. 왜 그리 영화를 좋아했는지 모르겠는데(웃음). 사람들이 제 곡을 들으면 그림이 보인다고 하던데, 그게 그런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아, 그리고 15년 전부터 제 인생의 테마가 여행이 됐어요. 시간만 나면 한 달 씩 여행을 갔으니까. 어떤 풍경을 볼 때면 항상 음악이 떠올랐어요. 그럼 서울에 올라왔을 때 그걸로 곡을 쓰고. 그 모든 것을 표현함에 있어서 왜 굳이 제가 장르를 택해야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내 음악 하는데(웃음). 기자들이 왜 버클리 다니면서 재즈피아노 안하냐 그래요. 그럼 제가 다시 물어보죠. 왜 그럼 내가 사람들 입맛에 맞춰서 음악을 해야 되느냐고요. 어떤 때는 재즈를 하고 어떤 때는 락을 하고, 노래하고. 여기 책상에 올려져 있는 앨범만 보더라도 조지 듀크, 지미 헨드릭스, 벡, 콜드플레이며 온갖 것들이 뒤섞여 있잖아요(웃음). 저는 이런 게 다 너무 좋아요.
선생님께서는 소위 트렌드라는 것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꾸준히 밀고 나가시는 것 같아서 그 점이 참 존경스럽고 감사해요. 그런데 작곡가는 자신의 음악을 듣는 청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요즘은 굉장히 천편일률적인 음악들만이 유행하고 있고, 예전에 비해서 사람들이 음악을 많이 안 듣기도 하는데, 혹시 그런 점 때문에 속상하시진 않나요?
외국에서 살아봤어요? (호주라고 대답하자) 거기에는 라디오만 틀어도 좋은 음악이 계속 나오죠? 트렌드가 뭐든 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걸 골라서 듣잖아요. 지금 얘기하신 트렌드는 우리나라만의 얘기에요. 외국에서 클럽을 가면 지금도 지미 헨드릭스가 나오고 레드제플린이 나오고 그래요. 레게만 계속 나오는 클럽도 있고 일렉트로니카만 계속 나오는 클럽도 있고. 그곳에는 개개인의 취향이 존중되는 문화가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라디오를 틀어도 들을 것도 없고. 티비를 틀어도 볼 것도 없고. 너무 속상한 거죠.
제가 너무 좁게 생각하고 있었네요. 이제 선생님께서는 음악계의 어르신인데(웃음), 어떻게 이런 상황을 좀 개선할만한 방안이 보이시나요? 지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면서 어떤 노력이나 시도를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방금 강의에서도 학생들한테 뭐라 그랬냐면, 제 잘못이라고 했어요. 다 어른들 잘못이라고. 저희 학교에는 매년 100명씩이 들어와요. 굉장히 잘하는 친구들이 들어오죠. 노래 전공 5명 뽑는데 2050명이 지원해요. 그런데 날고 기는 그 100명의 친구들이, 뽑아 놓고 보면 다 바보에요. 시험이 끝나고 붙은 애들한테 정말 유명한 비틀즈 음악을 틀어주고서 곡 제목을 맞춰보라고 그랬더니, 100명 중에 서너명만 알아요. 피아노 전공하는 애들한테는 피아노 곡을 틀어주고 이걸 누가 친 건지 맞춰보라고 하면 아무도 몰라요. 몽크는 누가 들어도 몽크고 빌 에반스는 누가 들어도 너무나 명백하게 빌 에반스인데, 그걸 못 알아맞추는 거예요. 오히려 음악을 하지 않고 취미로 듣는 애들은 다양하게 듣는데, 실용음악과 가겠다고 준비하는 친구들은 허비행콕이나 칙코리아, 오스카 피터슨만 줄창 듣고 연습하면서 오히려 음악을 모르는 바보가 된 거예요. 이게 다 획일화된 문화만을 고집했던 어른들의 잘못이죠.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찾아듣자, 세상에는 좋은 음악들이 너무 많으니까, 하고 어떻게든 학생들이 많은 음악을 접하게 하려고 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방송이 제일 잘못한 거죠. 90년대에 아이돌한테만 휩쓸려서 그런 애들 음악만 틀어주고. 음악 좀 듣는다는 방송은 다 없애고 아이돌이 나와서 떠드는 방송만 만들고. 몇몇 피디들이 어떻게든 음악 방송을 살려 보려고 했는데 벌써 대세가 넘어가버려서 이제 안되는 거죠. 그래서 학생들한테 맨날 외국에 나가서 라디오를 좀 들어보고, 재즈 페스티벌, 락 페스티벌에 가서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듣고 열광하는지 보라고 해요. 미국에 간 제자가 아침에 제 싸이에 방명록을 남겼는데 거기 ‘여기서는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얘기가 쓰여 있더라고요. 한국에는 자유가 없나? 없지는 않지만 느끼는 게 다른 거죠.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영혼까지 자유롭다는 걸 느껴요. 제 교수실 보면 창문마다 포스터니 휘장으로 가려놨잖아요. 창밖으로 보이는 게 썩은 건물들밖에 없어서 다 가려놓은 거예요. 너무 보기가 싫어서. 어른들이 문화에 신경을 안 써요. 진정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건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것들인데.
저번에 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음악을 해서 먹고 살려면 세컨드 잡은 꼭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걸 봤어요. 어머니가 그걸 보시고는 오늘 가서 꼭 물어보라고 하시던데(웃음), 정말 그런가요.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광고 음악을 하고자 하는 5만명이 있다고 하면 그 중에 10명 한다고 보면 되요. 그것도 계속 일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보스턴에 버클리를 다니는 피아니스트가 만 명이 있다고 생각해봐요. 밤에 그곳 클럽에서 연주하는 일을 하려면 오디션을 봐야 하는데, 만 명에 열 명 정도가 할 수 있어요. 그것도 주말만 일이 있고, 하루에 5만원 정도 벌죠. 그걸로는 안되니 택시운전이나 심부름센터같이 다른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요. 버클리 강사의 한 달 월급이 100만원이에요. 미국에서 어떻게 그걸로 살겠어요. 학생 중에 한 명은 운이 좋아서 앨범을 낼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 사람이 앨범을 냈는지는 아무도 모르겠죠. 키스자렛 같은 사람은 3, 40년 전부터 너무나 열심히 해서 지금 우리 귀에 들어오고 있는 거고요. 현실을 직시해야 해요.
직접 이렇게 귀로 확인하니, 너무 암울한데요(웃음).
그런데, 암울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왜 음악을 시작했는지, 그걸 기억해봐요. 우리가 돈 벌려고 음악을 시작한 게 아니었잖아요. 재밌어서, 좋아서 시작한 거잖아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맨 처음에 왜 자기 자신이 음악을 시작했는지 잊고 있으면, 음악은 금방 그만두게 되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요. 왜인지 알아요? 그 친구는 음악을 할 친구가 아니었던 거예요. 자신이 음악을 진짜 좋아해서 시작했음을 기억하고 있다면, 무슨 난관이 있어도 음악을 하게 되어 있어요. 근데 음악을 중간에 안 하면, 그 친구는 음악을 정말로 좋아하지 않았던 거예요. 뭐 그냥 좋아했던 거지 절실했던 건 아니죠. 저 같은 경우에는 정말 음악이 미친듯이 좋아서 시작했던 거였거든요. 그게 아니면 그만 두게 되는 게 당연한 거예요. 자신이 미치도록 좋아했다면, 끝까지 가는 거예요. 암울한 게 아니라 정반대죠. 가난이고 뭐를 떠나서 음악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너무 행복하고 선물이고 감사해야하는 거예요. 음악을 하면서 세상을 살 수 있다니. 최고로 행복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달 말, 그와 그의 제자들이 함께 만든 ‘정원영밴드’의 공연에서 그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음악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어떤 난관도 행복이라는 그의 말에서 나는 그 때 보았던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쌓아놓았던, 그를 향한 질문들은 한 구석에 접어놓았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시종일관 얼굴이 빛나던 그처럼, 본교의 학생들도 자신의 세계 속에서 오랜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이민휘 기자 (colagom@karts.ac.kr)

덧글
루씰 2009/10/12 11:55 # 삭제 답글
기사 잘 봤습니다. 담아갈께요.